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소포타미아 문명 (문단 편집) == 천문학 == 메소포타미아 일대의 천문학은 시대가 몇천년 전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발달된 수준이었다. 특히 [[바빌로니아]]인들은 천문 현상이 주기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수학적으로 이를 파악, 예측하려 시도한 최초의 민족이었는데, 고대 바빌로니아의 서판에는 양력 1년 동안 낮의 길이에 대한 수학적 계산이 발견된 적도 있다. 단순히 하루나 며칠 단위가 아니라 몇십년 단위로 천문 현상을 관측하기도 했다. '에누마 엔누 엔릴' 문서의 63번 토판에는 무려 '''21년'''에 걸친 [[금성]]의 주기 변화에 대해 기록을 해놓았을 정도. 인간이 남긴 기록들 중 행성들의 움직임이 주기적이라는 것을 명시한 가장 오래된 문서로 여겨진다. [[니네베]]에서 발견된 상아판에는 [[별자리]]와 [[행성]]들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단위 변환표가 적혀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따른 일반적인 바빌로니아 세계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꽤 되지만 정작 당대의 천문학자들이 우주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즉 바빌로니아의 우주관에 대해서는 확실한 게 없다. 워낙 단편적인데다가 이때까지 밝혀진 것도 드물기 때문. 왜 세계관과 우주관을 다르게 이야기하냐만 당대 바빌로니아에서는 '''일반인들의 세계관과 천문학자들의 우주관이 명백히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알려진 것을 말해보자면, 바빌론 천문학자들은 하늘과 지구가 구형이라고 생각했으며 상호간의 통합성, 완전성을 중시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지구가 중심이라는 [[지동설]]은 아니었다. 지구가 세계의 중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구가 우주와 동일한 존재로서 함께 공존하는 존재라고 믿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또한 [[평행우주|지구와 우주가 여러 개라고 믿었다]]는 증거도 있다. 7개의 우주와 7개의 지구가 존재한다고 믿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는 일곱 세대의 신들이 있다는 신앙과도 연관이 있었다.] 천문학의 발달은 [[점성술]]의 중요성과도 연관이 있었다. [[이집트]](당시 기준으로 말하자면 [[나일강]] 유역)는 북쪽으로는 [[지중해]], 그 외의 지역은 사막으로 둘러싸여져 있고 다른 지역으로 통하는 지역이래봤자 동쪽의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뿐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폐쇄적인 지형이었다. 그러다 보니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비해 정치적으로 상당히 안정된 지역이었다. 그에 비해 이 지역은 동쪽으로는 [[이란]] 고원, 서쪽으로는 [[소아시아]], 남쪽으로는 광활한 [[사막]]지역, 북쪽으로는 [[캅카스]] 지역과 연결된 개방적인 지형이다. 그러다 보니 이집트에 비해서 외적의 침입이 잦았고, 이러한 지리적 영향으로 인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사람들은 '지금 내가 소속되어 있는 사회에서 잘 살아야된다'라는 현세적인 면이 강했던 반면 이집트 사람들은 '지금은 비록 힘들지라도 [[파라오]]를 믿으면 죽어서는 편안하게 안식을 취할 수 있을 거야' 라는 내세적인 면이 많았다고 한다. 본래 [[점]]이라는 것이 내세의 평안보다는 현세 지향적이라고 볼 수 있는 부와 권력, 명예를 예측하는 학문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800px-Babylonian_tablet_recording_Halley's_comet.jpg|height=3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32575001.jpg|height=300]]}}} || || '''{{{#E4C77E [[핼리 혜성|{{{#E4C77E 핼리 혜성}}}]]을 기록한 토판}}}''' |||| '''{{{#E4C77E 별을 관측하는 학자들}}}''' |||| 메소포타미아인들은 하늘의 움직임이 곧 운명과 미래를 예측한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천문이 절대적이라고 보지는 않았고 사람이 어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도 믿었다. 하지만 애초에 하늘에서 미래를 읽지를 못하면 대처고 뭐고 할수가 없었기에 하늘에서 예언의 징조를 읽어내기 위해 엄청나게 공을 들였는데, 그 대표적인 문서가 앞서 언급한 '에누마 엔누 엔릴'이다. 기원전 2700년 경에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보고 만든 일종의 예언 지침서다. 예를 들어 '첫째 날에 [[달]]이 나타나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아니면 '달이 왕관을 쓴 형태로 나오면 왕이 가장 높은 명예에 오를 것이다' 이런 식이다. [[일식]]과 [[월식]]은 초특급으로 중요한 이벤트라 아예 지역별로 미칠 영향을 계산하는 내용을 써놓기도 했다. [[고바빌로니아]] 시대에 쓰인 '아스트롤라베'[* 후대 [[고대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천문 계산기 [[아스트롤라베]]와는 다르다.]는 천문학에 관해 논한 가장 오래된 [[쐐기 문자]] 토판들 중 하나다. 총 36개의 별들을 수록해놓았고 별과 시간을 각각 연결해서 풀어썼다. 굳이 36개의 별을 언급한 건 기존 도시국가 엘람, 아카드, 아무루의 천문학을 합친 걸로 보이는데, 각각 12개의 별들을 대응시켜서 총 3세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각각 12개의 별을 1년 12달에 대응시켜서 이걸로 천문도 보고 점도 치고 예언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했던 것. 이렇게 3개씩 짝짓는 전통은 [[엔릴]], [[아누]], [[에아]] 3신의 전통과도 연관이 있는 걸로 보이지만 후대에 천문학이 발달하면서 점차 사라진다. [[신바빌로니아]] 시대에도 천문학은 여전히 중요한 학문이었지만 고대 그리스와는 달리 메소포타미아 학자들은 이론에 관심이 없었다. 대부분은 그저 천문 현상의 예측과 관찰에 치중했지 [[기하학]]이나 [[수학]]을 이용한 특별한 우주론이나 세계관을 제시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아무 업적도 남기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칼데아인 천문학자들은 일식 주기 및 [[사로스 주기]]를 발견해냈다. 태양이 황도의 움직임과 100%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까지는 밝혀냈지만 그 이유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이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로 돌기 때문에 그렇다. 원일점 주위에서는 더 느리게 움직이고 근일점에서는 더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후 메소포타미아 학자들이 남긴 풍부한 실측 자료와 우주관은 [[셀레우코스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페르시아]]와 [[이슬람]] 천문학까지 영향을 미치며 인류 역사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